HOME New column
가랑비에 옷 젖듯이 에세이를 쓰라
Written by 서재진 대표 | Published. 2021.01.06 18:29 | Count : 263

글은 생각과 마음을 담아내는 거울이다. 

2000년도에 유학 나올 당시 썼던 ‘자기소개서’를 아직도 가지고 있다. 읽을 때마다 얼굴이 붉어지곤 한다. 서투른 문장, 무엇보다 나를 소개함에 있어 2남 2녀의 막내 라는 관계를 먼저 말했다. 

미국 대학은 관계 속에 있는 '나'보다는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을 보고 싶어한다. 따라서, 에세이는 점수나 학점이 아닌 올곧이 ‘나’ 만을 보여주는 독무대인 셈이다. 주인공이 나이고, 관계나 사건은 나의 견해 속에서 재해석된다. 매해 주제가 정해지기는 하나, 대부분 같은 맥락이다. 

'나'라는 사람은 누구인지, 나에게 영향을 준 인물은 누구인지를 묻는다. 
십 여 년의 인생을 살아오면서 어떤 힘든 고비가 있었는지, 그 고비를 어떻게 넘겼는지 서술하라고 한다. '나'라는 사람을 글로 표현할 때 주의할 점이 있다. 문맥에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나의 업적을 나열하지 않는 것이 좋다. 자기 도취에 빠져서 이력서를 찾아보면 다 나오는 일들을 본인 입으로 심취해서 말하기 시작하는 순간 그 글은 매력을 잃을 수 있다. 
글 속에 모든 것을 담고자 갖가지 비싼 재료들을 한꺼번에 넣어서 고유의 맛을 잃어버린 잡탕 찌개가 되어버린다. 중구난방으로 산만해지기 일쑤다. 

650자 내외의 글을 읽으면서 소름이 돋기도 한다. 화려한 문장도, 자랑도 없는 글 속에 세상을 꽤 뚫어보는 통찰력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잔잔한 호수같은 글 속에 매서우리만큼 날이 선 눈매가 서려있다.

[코넬대학교 Dr. Lewis 지도 교수님 실험실에서 석사 논문 실험을 하면서]

지금 생각해도 그날의 감동이 물밀 듯 밀려오는 수필을 읽은 적이 있다. 침대 매트리스에 대해서 썼다. 매트리스 사이즈를 말하면서 써 내려간 에세이에 힘들었던 가족사를 담았다. 이민 오자마자 부모님이 사 주신 매트리스는, 울다 지쳐 잠든 소녀를 아무것도 묻지 않고 그대로 감싸 주었다고 전하면서, 자기의 꿈은 매트리스가 되는 것이라고 했다. 

어렵고 힘든 시간을 겪은 저자는 ‘상처 입은 치유자가 되어 지친 이들이 맘놓고 울다 잠들 수 있는 어깨를 내어주는 침대 매트리스가 되겠노라’라고 담담하게 써 내려갔다. 수필을 읽고 어른인 내가 부끄러워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훔쳤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렇다면, ‘이런 수필을 어떻게 준비해서 써야 하는가?’ 라고 반문할 것이다. 위의 학생의 경우 처음부터 완벽한 수필이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았다. 수줍은 듯 써 내려간 수필을 들고 와서, 나는 조금만 더 솔직하게 써보자고 권했다. ‘나’다운 것이 가장 독보적인 것이니 조금만 더 드러내자고 했다. 그렇게 시행착오를 거쳐 아름다운 글이 나오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글 쓰는 것을 좋아하는 내가 즐겨 사용하는 방법이 있다. 
주제에 대해서 충분히 생각하고, 그 생각이 목까지 차오르게 하는 방법은 ‘가랑비에 옷 젖듯이’ 쓰고자 하는 글의 주제에 관한 생각으로 나를 적시고 마침내 그 글에 흠뻑 물들게 하는 것이다. 조금씩 주제가 스며들도록 최대한 자주 생각을 노출시킨다. 만약, 8월에 에세이 주제가 공표된다고 하면 컴퓨터 맨 첫 화면에 주제를 걸어놓고, 오고 가며 보는 것이다. 주제만 봐도 이미 머리는 그에 대한 생각을 하기 시작한다. 초안을 몇 자 적고 나면, 밥을 먹을 때도, 길을 걷다가도, 문득 문득 글에 필요한 소재 거리가 채워진다. 그렇게 글은 가랑비에 옷 젖듯이 쓰여지는 것이다. 

마지막 가장 중요한 단계는 다듬기다. 어젯밤 연애 편지 써 내려가 듯 적은 글들을 이틀 뒤에 읽으면 얼굴이 화끈거릴 때가 많다. 시간 간격을 두고 재차 읽으면서 내용을 다듬고, 문장을 가다듬고, 마지막으로 단어들을 손질한다. 

세상에서 가장 귀찮고 하기 싫은 일 중 하나는 내가 쓴 글을 다시 읽는 것이다. 초벌, 재벌, 정벌 바름으로 세심하게 발라야 벽이 견고해 지는 것처럼, 적어도 다섯 번 이상의 검토가 아름다운 글을 탄생시킨다.

[코넬대학교 Dr. Lewis 지도 교수님 실험실에서 석사 논문 실험을 하면서]

글은 생각과 마음을 여과없이 반영하는 거울과 같아서, 하룻밤 사이에 급하게 써 내려갔는지, 몇 번 손때를 묻혀 닳고 닳을 만큼 다듬었는지, 글을 쓰면서 눈물 한 방울을 떨구었는지, 깔깔거리며 썼는지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담아낸다. 짧지만 가장 치열하게 살아낸 십여 년의 인생을 정성스럽게 담아낸 글, 무딘 칼이 아닌 날이 선 매서운 눈매로 세상을 꿰뚫는 통찰력 있는 글로 고등학교 생활을 아름답게 마무리 하기 바란다.

* 본 기고/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서재진 대표
코넬대학원 식품 영양학 석사
존스홉킨스 보건대학원 보건학 석사
현) Suh Academy 대표 (미국 버지니아, Fairfax County)

서재진 대표  columnist@dherald.com

<Copyright © The Herald Insight, All rights reseverd.>

iconHOT ISSUE
Reply 0
View All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Back to Top